W&C
우리 집에서, 워치 앤 칠
나만 아는 이야기
인트로

〈나만 아는 이야기〉는 ‘워치 앤 칠’ 온라인 플랫폼을 개인의 취향대로 유영하면서 경험한 일상적인 이야기나 비평적 관점을 담지하는 텍스트를 생산하고, 온라인 플랫폼에서 공유하는 전시연계 위성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으로 영상 콘텐츠 감상방식이 급변함에 따라 예술작품이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감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기획되었다. ‘워치 앤 칠’과 동일하게 3개년 프로젝트로 진행될 예정이며, 방향성과 후속 전시주제의 확장 가능성을 고려하여 담론 생산을 지속하고자 한다.

〈나만 아는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체험하는 미술관, 사적 공간 안으로 구겨져 들어오다」
유현주(연세대 독문과 교수)
현재 우리는 미디어 플랫폼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영상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관람객이 더이상 콘텐츠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의 현재 위치가 콘텐츠를 감상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문화예술 콘텐츠를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에서 감상하는 방식에 대해 비평적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2부 문화계 인사들의 사실적 플랫폼 경험일기 「내밀함에 관하여」
윤향로(현대미술 작가), 조은비(독립 큐레이터), 이기리(시인)
코로나 시대의 집은 거주뿐 아니라 사무, 육아, 친목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이 되었다. 「내밀함에 관하여」에서는 집을 다양한 층위가 중첩된 공간으로 사용하는 동시대 문화계 인사들이 ‘워치 앤 칠’ 플랫폼을 경험하고 작성한 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들의 일기를 소개함으로써 개인의 취향, 주변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경험과 감상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3부 소설가의 단편 플랫폼 여행 에세이 「여행」
백민석(소설가)
‘워치 앤 칠’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웹페이지를 떠돈다는 점에서 여행의 경험방식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여행이 제한된 이 시기에 소설가가 여행하듯이 온라인 플랫폼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단편 에세이를 통해 공유하여 새로운 예술작품 감상 경험을 긴 호흡으로 공유해보고자 한다.


2부


윤향로 (현대미술 작가)

윤향로는 동시대 이미징 기술을 기반으로 추상 회화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대표작 “스크린샷” 시리즈를 “유사 회화(pseudo painting)”라는 이름 아래 회화, 인쇄물, 조각, 비디오, 가구, 설치 등 다양한 매체로 변주하며 발표했다. 최근에는 미술사 속 작품의 이미지를 여러 층위로 다루며 작업을 시도한다. <캔버스들> (학고재, 서울, 2020), <서플랫픽터> (P21, 서울, 2018), <리퀴드 리스케일> (두산갤러리, 뉴욕, 뉴욕주, 2017) 등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광주비엔날레, 2018),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 (아뜰리에 에르메스, 2017)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굿-즈> (세종문화회관, 2015), <알아서 조심> (갤러리 175, 2013) 등의 전시와 행사를 공동 기획했다.


‘집’에 대한 소고
집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The Home Is Not Prepared.)

나에게 집은 집일뿐이었다. 십 대 때에는 입시 때문에 늘 새벽에 들어왔고, 이십 대에는 학교 실기실이나 작업실에서 자는 일이 많았다.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밖에서 동료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신났다. 그렇게 나에게 집은 잠을 자는 곳 이상의 의미가 없었고, 잠만 잘 수 있으면 작업실, 레지던시, 그 어디든 집으로 여겼다.

나는 2019년 결혼했고, 처음으로 내가 만드는 집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좀 막막했다. 그때까지 원하는 집의 모습을 고민한 적 없으니까. 심지어 내가 첫 집을 고르게 되었는데, 작업실과 가까운 아파트 중에서 두 가지 기준으로 하나를 골랐다: 탁 트인 풍경. 청소하기 편한 크기. 가구를 고를 때에도 평소 의자나 조명을 수집해온 남편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지만, 나는 어딘가 비현실적이었다. 뭐랄까, 이 모든 과정이 나에겐 심즈(The Sims)*에 로그인 해 이미 지어진 집을 하나 고르는 것 같았다. 자, 집은 골랐고, 앉으려면 의자가 필요하지? 그럼 이 의자를 여기다 두자, 이렇게.

나는 그해 11월 출산을 했다. 그런데 그해 12월 31일, 중국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이 잇따라 발병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고,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다. 각국의 인사들이 외쳤다: Stay Home. The World Was Not Prepared for Covid-19. 유아기를 제외하고, 내 인생 어느 때보다 오래 집에서 머물렀고, 이 상황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었다. 집에 갇힌 나는 스마트폰에 매달렸다. 처음 접하는 고강도 풀타임 노동 사이의 짧고 달콤한 휴식 때문일까,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초조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실시간으로 업로드되는 소식들에 집착했고, 그만큼 집중력은 떨어지고 불안감은 커졌다. 내가 선택한 우리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했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괴로웠다.

나에게도 시간이 흘러 드디어 육아 선배들이 말하는 백일의 기적이 일어났고, 조금 정신을 차려 몇 개의 소셜 미디어를 탈퇴했다. 그제야 나에게 집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가구의 위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고치거나 사고 싶은 것도 생겼다. 여전히 심즈의 건축물 속이지만 이제야 진심을 다해 고민해 원하는 형태로 플레이하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정신없다. 아이는 집안일을 끊임없이 리셋해주고, 남편과 일정이 꼬이면 공부, 회의, 강의, 심지어 작업 에스키스도 집에서 해야 한다. 집에 있는 게 답답할 때도 있지만 생의 감각을 느낄 때도 많아졌다.

나는 최근에 가족들과 우리가 살아갈 집에 대해 이야기했다. 결혼 전까지 내가 아는 이상적인 집은 도널드 저드의 101 스프링 스트릿 집(101 Spring Street)뿐이었다. 그런데 계단이 가팔라 힘들 것 같고, 1층에서 작업하면 저드처럼 기웃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창이 많아서 냉난방비도 많이 들 것 같고, 작품이 상하지 않으려면 좋은 유리가 필요하겠다. 저드처럼 침실에 친구들 작품이 많으면 이상하려나? 너무 미술가를 위한 집 같긴 하다. 그럼 또 어떤 형태의 집이 있을까? 남편은 집을 짓자고 하는데, 내가 지은 집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 행복할까? 끝나지 않은 팬데믹과 함께 나의 집은 아직 준비 중이다.

*맥시스(Maxis)가 개발하고 일렉트로닉 아츠(Electronic Arts)가 배급한 생활 시뮬레이션 비디오 게임 시리즈

2021. 9. 17. 금
W&C next available video work by Koo Donghee, 2021. 9. 17.
오후 4시 공개 작품 Available at 4 PM KST, September 17, 2021.


작업실에 있다가 구동희의 <타가수분>(2016)을 관람할 수 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2016년 가을인가, 로얄&컴퍼니 복합 문화공간에 있는 갤러리 로얄에서 열린 구동희 개인전에서 본 영상 설치와 소파가 떠올랐다. 변기 등의 욕실 관련 제품들이 전시된 쇼룸을 지나 계단으로 올라가면 등장하는 넓은 마루 한 켠 어둡게 연출된 공간에 서있는 스크린과 다인용 소파. 전시를 보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내가 지금 욕실 전문 기업 건물 안에 있음을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던 그곳. 생경한 모습의 전시장에서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구동희의 작업을 보니, 작품 속 이미지들이 서로 조금씩 드러낸 피부를 맞대고 앉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보수적인 관객이라서 비메오나 유투브 같은 플랫폼에서 영상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넷플릭스처럼 자막 언어를 선택하거나, 내가 평소에 사용하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로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을 상상한 적도 없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작품을 온라인에서 감상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작가와 기획자가 연출한 물리적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설치 형식이 작품의 수준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전시에 대한 물리적, 신체적 감상이 작업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동희의 이 전시와 작품에 대해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대믹이 공표된 지 1년 반. 오늘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떴을 때 무엇이든 영상 작품을 하나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안의 모든 창을 열고 멀리서 들리는 경적, 바람과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았다. 이는 요즘 내가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공간이다. 무릎 위에 올린 맥북으로 영상 작품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영상 어딘가에서 뽑아낸 대표 이미지가 사라지고 (전시장과 달리) 작업이 처음부터 재생된다. 놀랍게도 내 안의 모든 감각들이 날카롭게 살아났고 이 감각의 총체는 작품을 너무나 입체적으로, 실감나게 경험하게 했다. 이 경험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짜릿했다.

영상 작품을 전시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내게 소설을 읽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라 느껴진다. 내가 앉아있거나 서있는 시공간이 내가 설정하는 감각과 장소로 바뀌고, 매체에 다이빙하는 것. 네트에 액세스. 그 몰입은 쉽게 깨질 수도 있고, 오랜 시간 지속될 수도 있는데, 이는 나의 경험치와 집중력 등에 따라 언제든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종류의 감각이다. 게다가 주변 설정을 바꿔가며 다양한 경로로 진입해 감상하는 방식은 또 다른 작품의 방향성과 해석의 여지를 보여주었고, 감각을 확장하는 통로가 되었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며 한 가지 방향으로 감상의 경로와 방식을 설정해 작품을 관객에게 제시할 수 없는 것처럼, 이제 미술 작품 감상의 진입 경로를 통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과거보다 다양해진 감상의 방식은 이제 각자의 세계에서 각자의 물아일체를 어떤 식으로 끌어낼지, 즉 어떤 조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의 몰입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거대한 욕실에 들어가 그 안에 소파를 두고 전시를 보는 것 같았던 전시장에서의 <타가수분> 관람과 나의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워치앤칠’ 웹을 통해 <타가수분>을 보는 경험은 마치 구동희의 작품 안에서 교차 편집되는, 이란성 쌍둥이 같은 씬(scene)을 보는 것 같았다. 흐릿한 경계 너머에서 대화를 주고받는 구동희의 작업처럼 어디서든 작품과 관객은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하게 되었다.

2021. 9. 24. 금
물리적 전시장이 아닌 곳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50가지 방법


웹브라우저로 작품을 자막 없이 봤다.
자막을 틀고,
언어를 바꿔가며,
속도를 줄이거나 늘리고 바꾸며,
소리를 키우거나 줄이며,
음소거하고,
집에서 맥북으로,
이동 중이나 휴식 중에 아이폰으로,
스튜디오에 출근해 아이맥으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으로,
블루투스 헤드폰으로,
컴퓨터에 내장 된 스피커로,
소파에 앉거나 누워 60인치 텔레비전으로,
스쿼트나 런지를 하며,
가정용 실내 바이크를 타며,
짐에 가서 러닝머신 휴대전화 거치대에 아이폰을 꽂고 빠르게 걸으며,
저녁 9시 아기를 재우고 아기 옆에서 소리 없이 몰래 아이폰으로,
집에서 아무도 없을 때 소리를 최대한 키워서,
중간에 멈췄던 작업을 다시 재생하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얼음을 넣은 커피를 마시며,
점심으로 준비한 샐러드를 모니터 앞에서 먹으며,
사파리 웹 기본 화면으로 보다가 전체 화면으로 바꿔서,
화면을 최대한 작게 줄여서,
혼자 보다가 친구와 같이,
작품 링크를 친구에게 메시지로 공유하고,
작품 링크를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화장실에 다녀왔다가 지나간 시간만큼 뒤로 돌려서,
산책하다가 벤치에 앉아서,
보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또 다시,
집 안의 모든 창문을 닫고,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고,
아이폰으로 보다가 안 되겠다, 이건 텔레비전으로 봐야겠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보다가 이건 작업실에 가서 봐야겠다,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스타벅스에 앉아 마스크를 쓰고,
작업실로 돌아와 마스크를 벗고,
집에 돌아와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기 전 불현듯 생각나서,
아이폰에서 다른 화면으로 미러링해서,
전시에서 본 작업을 다른 매체로 다시,
화면을 바라보지 않고 소리만,
일단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며 슬쩍,
맥북 배터리가 나가서 다른 기기를 찾아,
다른 기기도 모두 꺼져서 충전하기 위해 기다렸다가,
영상을 보다 갑작스럽게 울린 초인종에 놀라 쏟은 커피를 수습하고,
문을 열어 세탁물을 받아 잠시 어딘가에 걸어두고,
갑작스런 방문객을 차단하기 위해 문을 잠그고 다시,
우선 어떻게든 다시.

2021. 9. 30. 목
위안 광밍, <주거> 2014


물에 잠긴 거실의 시간이 부유한다. 벽에 걸린 시계는 제 기능을 잃고 특정 구간을 반복하며 일상의 감각이 작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물속의 청각 같다. 화면의 움직임을 좇으면 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것, 이케아에서 살 수 있을 법한 가구들이 실제 스케일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물속에 잠긴 거실의 사물들은 부유하는 시간 속에서 유영하다 폭발한다. 그리고 폭발은 시간을 붙잡으려는 듯, 모든 일을 취소하는 것처럼 다시 사그라든다. 그렇게 물속의 거실은 폭발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이 작품을 보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현실과 관계없이 낭만적으로 그려지는 폭발과 그 파편의 아름다움. 내 앞의 사물이 아니라 스크린 너머라는 거리감 속에서 느끼는 어떤 희열. 화려한 시각적 효과와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가까워진 파괴의 미학.

현실의 폭발은 다르다. 폭발이 일어난 장소가 환기되지 않는 곳이면 길게는 일주일까지 들어갈 수 없다. 방독면을 쓰고도 앞이 보이지 않아 그을음, 연기, 유독가스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 폭발의 원인을 모를 경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원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폭발 뒤에는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고 금전적 손실뿐 아니라 시간적, 정신적 손실까지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폭발을 실제로 경험한 순간에 나도 까맣게 뒤덮인 잿더미 앞에서 어떤 아름다움 느꼈다.

영화 <인셉션>에서 앨런 페이지가 연기한 아리아드네가 설계한 꿈속에서 등장하는 폭발 장면은 파리에서 촬영했다. 파리 시내에서 실제 폭발물을 사용할 수 없어 고압의 공기를 이용해 폭발 장면처럼 보이도록 물건을 내뿜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폭발은 다른 어떤 영화보다 현실과 거리가 멀고, 완벽하게 깨끗하며 아름답다. 무언가 파괴되는 모습에서 핀셋으로 아름다움만 뽑아내어 완성한 그림 같다. 인간은 왜 파괴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까? 이것은 몰입의 문제일까? 아니면 시각적 욕망? 사그라드는 폭발은 아무런 피해를 남기지 않는다. 그저 현실의 감각을 뒤로 숨긴다.

2021. 10. 1. 월
메모 일기


많은 사람이 무형의 일을 생각하고, 어떠한 형상으로든 구체화시킨다.

한 대상에 완전히 몰입하는 경험은 얼마나 소중한가. 언제 어디서든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경험은 불과 1, 2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약간 이질감이 느껴져서, 일부러 지금보다 과거로 거슬러 가 미래를 상상하고 만든 현재의 전기차같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 유용함과 미지의 가능성은 또 다른 몰입을 이끈다.

컨버터블을 몰면 정말 머리가 안 휘날려요? 그거, 꼭 스포츠카 안 타본 애들이 머리 날리는 스포츠카 타는 모습을 그린 거 였다고.

“세상이 재미없으면, 그건 네가 재미없어 진거야” 친구가 한 말에 빠른 속도로 흡수된 이유는 내가 코로나 이후 많은 것이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재미없어진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잖아? 재미란 단어에 얼마나 많은 것을 내포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

‘집에서 영화보기’를 생각하면 나는 <매트릭스>(1999)가 떠오른다. 나는 매트릭스를 극장에서 보는 것을 놓쳐, 비디오 대여점에서 VHS 비디오를 빌려 봤다. 그런데 어쩐지 다른 어떤 영화와 달리 그 영화를 볼 때마다 계속 잠이 들어서 처음에 함께 보기 시작하던 동생만 완주를 하고, 결국 나는 15번 정도 시도 끝에 모자이크를 만드는 것처럼 완주했다. 연체료도 꽤나 지불해야 할 만큼 그 영화는 한 번에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조각이나 회화처럼 물질로 존재하는 작품의 좋고 나쁨은 대게 전시장에서 5분 안에 판단된다. 작품까지 가까이 걸어가 마주하고, 작품의 좌 우, 위아래, 앞뒤를 살피고, 이미지를 독해하고, 기호의 의미를 발견한다. 순서와 상관없이 이 과정은 여러 감각 기관을 통해 동시에 진행된다. (물론 첫인상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영상 작품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기본적으로 러닝타임이 포함된다. 게다가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영상이 시작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중간에서 시작해 엔딩 크레딧을 지나 내가 보기 시작한 장면 까지 한 바퀴를 다시 돌아야 한다. 작품의 구성과 짜임 등을 보고 감상을 중단할 때도 있지만, 나름 현대적 관객을 지향하는 나는 웬만하면 끝까지 본다.
   이러한 영상 작품의 감상은 물질로 존재하는 작품보다 내가 작품의 완성을 위해 함께 달리는 기분이 든다.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보조나 응원자로, 때로는 오늘 처음 만나 아직 인사도 못한 코치로. 트레드밀에 올라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 시간을 확인하고 달리며 남은 시간을 계속 체크하는 것처럼 전시의 플로어 플랜을 보고 러닝타임을 체크하고, 몸은 작품 앞에 두고 눈과 귀를 열고 달린다.

2021. 10. 8. 월
재민 씨에게


재민 씨 안녕하세요?
오늘은 집에서 <안개와 연기>(2013)를 보았어요. 어제 집에 손님이 와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남편이 오늘은 혼자 시간을 보내라고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갑자기 시간이 생겼어요. 이 오후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받은 이메일 하나가 떠올랐어요. “2021년 10월 8일. 오후 4시 공개 작품 차재민, 〈안개와 연기〉, 2013.”

이 작품을 처음 본 게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기울어진 각운들》에 함께 참여했을 때였나요? 저는 <몽유병자들>(2009)로 작가님 작업을 처음 봤는데 <안개와 연기>와 마찬가지로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 강렬했어요. 쇠붙이가 아스팔트나 건물 바닥에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크게 울릴수록, 땀 흘려 움직이는 댄서와 반대로 체온이 떨어지는 듯한 감각. 한 여름 새벽 다섯 시, 세상에 모든 가로등이 소등되고 해가 뜨기 직전, 차가운 공기와 함께 홀로 남겨진 기분. 텅 빈 도시에 울려 퍼지는 탭댄스 소리에 소름이 돋았는데, 그건 두려움이 아니라 환희에 가까운 것 같아요. 동시에 여러 감각이 한데 퍼즐처럼 꼭 맞아, 이 작가는 얼마나 세상을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재민 씨 작업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탭댄스의 소리와 장면은 일상에서도 자주 생각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숙련된 사람이 탭 슈즈를 신고 춤을 추면 동작에 따라 네 가지의 소리를 낼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말을 들으니 작품에서 반복되는 송도 신도시의 모습, 탭댄스를 추는 인물, 뉴스의 사운드, 인터뷰이의 음성이 각각의 음처럼 떠오르네요.

9월에는 《우리집에서, 워치 앤 칠》 전시를 보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 갔는데, 유일하게 여러 번 반복해 본 작품이 <엘리의 눈>(2020)이었어요. 2채널로 설치된 영상은 시지각 관련 기술은 어떻게 발전하는지, 그 기술 뒤에 어떤 욕망이 존재하는지, 응시하는 두 눈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시지각과 인식은 따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사실 <엘리의 눈>을 보면서 저는 4년 전 떠나보낸 반려견을 생각했어요. 수니는 저와 함께 한 16년의 절반을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채 살았어요. 저와 가족들의 무지로 시력을 보호해주지 못한 일, 마지막까지 많은 병 치례로 고생한 일이 떠올라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웠어요.

재민 씨의 작품을 보며 제가 만들지 못하는 종류의 아름다움과 단단함에 끌리는 것 같아요. 분노를 말하는 세련된 방법, 공허를 전달하는 효과적 표현, 노골적인 욕망과 관계없는 태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마주친 게 부암동 티파이였나요? 재민 씨가 생각하는 쓸쓸함과 공허, 도시와 인간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언젠가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조은비(독립큐레이터)

조은비는 KT&G 상상마당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풀에서 큐레이터로 일했다. 《아직 모르는 집》(아트 스페이스 풀, 2013), 《여기라는 신호》(갤러리팩토리, 2015), 《복행술》(케이크갤러리, 2016), 《모빌》(두산갤러리 서울, 2017) 등을 기획했고, 공동 번역서 『스스로 조직하기』(미디어버스, 2016)를 출간했다. 2022년 d/p기획지원프로그램 선정 전시 《리버서블, 우연을 기대》(가제)를 2022년 9월 d/p갤러리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온라인 플랫폼 경험에 관한 다섯 편의 일기

처음 이 글-“온라인 플랫폼 경험에 관한 일기”-을 청탁 받았을 때 나는 관음과 노출에 대해 생각했다. 남의 일기를 읽는다는 것과 남에게 읽힐 일기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 두 가지 욕구는 잘 어울리는 한쌍 같으면서도 동시에 서로를 배반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다시 말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은 만족과 함께 실망을 동반할지 모른다. 원치 않는 것을 원한다는, 그 감정의 토대를 뒤흔든다는 것.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제안에 응한 것은, ‘온라인 미술 플랫폼’이라는 장치가 그 양가성과 조응하고 있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반향은 내가 집이라는 공간으로부터 감지하는 고유한 진동과도 잘 어우러질 듯싶었다. 따라서 이 일기의 내용은 독자가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를 수도 있고, 어쩌면 심지어 무관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주지하듯 나는 이 글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글이라고 믿는다. 제안이 없었으면 쓰이지 않았을, 공개될 일기라는 모순이 이 글의 변치 않는 요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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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별 수 없이 주위를 돌아보게 된다. 출산 이후로 지난 몇 년 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네덜란드에서 지내는 2년의 시간 동안, 이국의 보육제도에 기대지 않은 채 오롯이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곧 이동과 행위의 제약을 의미했다. 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땐 ‘우리’와 저 밖의 세상은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매 순간 돌봄이 필요한 아기를 위해 집은 놀이공간, 일터와 연구실, 만남의 장소 등으로 그 쓰임이 다양해졌다. 어쩌면 그때 나는 제약으로부터 어떤 가능성을 찾으려 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팬데믹 직후 한국으로 돌아와 나는 또다른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두꺼운 매트리스 사이로 침범하는 아이의 소음은 종종 이웃 간에 긴장을 불러일으켰고, 맘충, 노키즈존 등 아이와 여성을 집단화하는 혐오와 적대적인 사회적 분위기는 외부 활동을 위축시켰다. 집은 애초부터 그저 대피소일 따름이었다. 긴급보육, 비대면 수업 등으로 전환된 교육과정은 아이들을 집으로 ‘가두는’ 일을 반복하지만, 정작 집 안에서 “대면을 피할 공간”은 없다. 닫힌 공간 속에서 실상 불가능한 비대면은, 공적인 영역을 기준으로 마련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아이러니를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몸과 몸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맞닿는 양육에 물리적 거리두기란 불가능하다. 아이와 함께 가던 공공 도서관은 방역 조치를 이유로 대출만을 허용하고, 학교 운동장과 단지 내 놀이터 이용은 제한되었다. 공공 미술관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예약 운영을 하지만, 아이들은 애당초 환영 받는 관객이 아니었다. “집에 있으라”는 말이 공허한 것은 원래 이들에게 온전히 허락된 공간은 ‘집’뿐인 탓이다. 따라서 만약 우리 사회가 팬데믹 이후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자 한다면, 나는 그 전환적 상상력을 지금, 여기의 공간-집에서부터 찾길 바란다. 집 안의 일과 집 밖의 쓰임은 분배되어야 하기에. 그리고 미술관 역시 그 분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팬데믹 이후 미술관들은 제가끔 자신의 새로운 (혹은 마땅히 했었어야만 하는) 역할을 다급히 상상하고 있다. 이 플랫폼 역시 그 상상의 구현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어지는 일기는, 내가 그 상상 속의 누군가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향한 내 일상의 응답이다.

2021. 9. 9. 목

오늘 오후 어린이집에서 코로나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자가 격리를 해야한단 연락을 받았다. 아이를 곧바로 하원시키고 나는 네 번째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이제부터 2주간 아이와 함께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할 테다. 육아는 내 시간감각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양육의 일상이란 끊임없는 ‘반복의 반복’이라 불과 어제의 기억조차 쉽게 증발해버린다. 아이에겐 되돌릴 과거나 막연한 미래보단 ‘지금’이 더 중요한 탓일까. 우리는 서로와 함께 서로에 기대어 오늘만 산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성큼 자란 아이의 낯선 모습에서 시간은 가시화된다. 그렇게 어른과 아이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작년 네덜란드에서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네살배기는 영문도 모른 채 격리되었지만, 불과 일년 사이 아이는 이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분명한 목소리로 코로나가 빨리 사라졌으면 한다는 아이의 말엔 진심이 담겨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이가 겪게 될 답답함보단 당장 내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계획된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아이의 협조와 남편과의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앞으로 쌓이게 될 피로에 벌써부터 고단해진다.

물론 팬데믹 이후로 일상화된 비대면 시스템이 주로 집에서 일하는 내 업무에 큰 불편을 주는 것 같진 않다. 돌이켜보면 귀국 후 지난 일 년여 간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대부분의 업무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때로는 ‘사회적 거리두기’란 명분으로, 비대면의 편의성이 대면 만남을 자연스럽게 대체하기도 했다. 어느 문화재단의 심의 평가 역시 온라인으로 이뤄졌고, 평가가 종료되기까지 나는 실무자와 단 한번의 만남을 가졌을 뿐이었다. 작가성이나 작품을 둘러싼 (수치화가 어려운) 추상적인 판단은 새로운 기술과 제도에 의해 매끄럽게 합리화된다. 그리고 이 다양한 가상 회로망 속에서 내 삶은 안전하게 유지되는 듯 보였다.

여기 갇혀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가늠해본다. 모르겠다. 아니, 너무 잘 알겠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서 돌봄의 ‘소란스러움’을 견뎌야 한다는 것. 게다가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이 돌봄을 나누기 위한 ‘돌봄노동 시스템’이 연쇄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창밖에서는 밤낮 가릴 것 없이 택배 차량의 상하차 소음이 들려온다. 아파트 복도를 구르는 카트의 요란한 쇳소리와 분리수거 폐기물을 치우는 대형 화물차의 기계음, 팬데믹 이후로 늘어난 리모델링 공사음까지. 어떤 돌봄은 그 소란스러움으로 스스로를 가시화한다. 그러므로 코로나가 일시적으로 시장을 멈춰 세웠다 하더라도 이 시스템 아래 완벽한 멈춤은 없다. 플랫폼 경제가 이제 인간의 신체와 사고 행위 전 영역에 걸쳐 다양한 대행 서비스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 쇼핑, 뉴스, 청소, 세탁, 영화, 음악, 미술작품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나를 대신해 내가 원하는 것을 큐레이션하고, -당신이 지불 능력만 있다면- 무엇이든 대여하고 대리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문득 나는 궁금해진다. 이제 인간은 스스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일까? 설령 그럴 수 있다해도 그럴 기회가 주어질까? 모니터 화면 안에 잘 배열된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격리된 내 처지가 그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과 실물로부터 유리된 채 ‘우리’는 절차화된 순환경제를 구성하고 있다. 그렇게 2주 간 나는 여럿의 표적이자 실적이 될 것이다.

2021. 9. 24. 금

‘워치 앤 칠’에서 금요일마다 업데이트 되는 작품 공개 알림 메일이 왔지만, 벌써 두 번째 메일을 지나쳤다. 한번은 성가신 메일들 탓에 무심코 지나쳤고, 그 다음 번에는 자가 격리 해제 후 지연된 일상 탓에 확인할 겨를 없이 바빴다. 하지만 그런 상황 때문이 아니더라도, 플랫폼에 관한 글을 좀처럼 쓰기가 어렵다. “제도의 제안에 따른 제도적 경험”에 관한 글이, 왜 그 경험 자체를 서사화하는 데 실패하는가. 나는 플랫폼 속 영상을 관람하고 일기를 쓰면서도, 어쩐지 거기서 본 작품의 내용이나 플랫폼의 인터페이스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이는 플랫폼을 구성하는 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그러니까 이 실패의 원인에는 나 자신의 몫 또한 있을지 모르겠다. 말하자면, 왜 나는 이 감상에 몰입하지 못하는가.

분명 누군가는 이 플랫폼이 가진 장점들을 발견하고 확장시키며 작업들을 향유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나 내게 이 생각은 결국 미술관이라는 제도에 대해 재고하게끔 할 따름이다. 온라인 플랫폼의 기술적인 가능성과 제약이, 특정한 개인-가령, 돌봄 노동자 또는 예술 감상에 대한 동기를 충분히 부여받지 못한 이들-을 암묵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내게 어떤 작업이나 웹사이트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지난 자가격리 기간 동안 작성한 메모로 오늘의 일기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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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모두 속수무책이다. 유예된 약속과 기약 없는 만남, 중단된 일상과 취소된 계획 앞에서 시간은 무력해진다. 지금 여기 가능한 것은, 결국 기다리는 일 뿐이다. 기실 우리는 그저 현재로부터 벗어나길 바랄 따름이다. 그렇게 비-현재가 현재를 말소시키고 있다. 우리는 지금을 살지 못한다. 미래를 향한 선형적인 시간배치는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를 이뤘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명료한 시점들은 시간을 말끔하게 재단하고, 그 위에 간격과 주기라는 친절한 범례를 새겼다. 가령 우리는 현재를 준거로 과거를 돌이켜보거나 미래를 내다보았다. 즉, 미래를 기약하는 이 위계적인 시간성은, 현재를 사는 원동력이자 다가올 시간을 대비하는 믿음직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보의 환상은 ‘어제’ 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케 했다. 예컨대, 4년마다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어김없이 기록을 갱신하던, 그 환희의 순간들을 분명 쉽사리 잊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삶은 어떠한가. 균질한 간격으로 물결치던 시간의 파동이 어느새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의 규범과 제도로부터 울려 퍼지던 리듬은 대중없이 깨지고, 그 위계와 작위성을 뒤흔드는 진동 속에서 익숙한 템포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따라서 불확실해진 것은 결국, 애초에 아직 오지 않은 하나의 ‘미래’가 아니라, 이를 대비하고 또 맞이하던 그 수많은 관성적인 ‘현재’들이다.

이 속수무책 속에서 제도의 권위는 ‘거리두기’의 아이러니만큼 오히려 더 강력해보인다. 과학의 견고한 체계 아래 이성과 합리를 담지하는 기술만능주의, 혹은 그 ‘예측’의 패러다임이 근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개인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를 상실한 개인들은 불안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내려놓고 제도와 권위에 의지하고, 미래에 대한 책임을 그에 전가한다. 하지만 제도나 권위는 실상 그 무엇도 책임지지 않는다. 도리어 그것들은 개인에게 그 전가의 책임을 물을 따름이다. 재작년 겨울, 공기업의 부당한 고용구조를 규탄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의 젊은 아내는 광화문에 분향소를 세우고 고인의 운구차를 세웠고, 이는 이내 “방역”을 이유로 강제 철거되었다. 나는 그가 실로 “공공의 안전”을 어떻게 위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억울함에 대한 관용이 또 다른 “불법집회”를 용인하는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다는 공권력의 설명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그럴싸한 말들에 반박할 근거를 도무지 마련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와 주체성을 제한하는 공적인 힘에 대응할 마땅한 언어가 날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개인의 왜소화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긍정하게끔 만드는 이 현실의 역설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공표된 기준은 타자와의 거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명시하지만, 실상 이제 그 누구도 타인과 얼마만큼의 ‘간격’을 가지고 만나야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모든 상황은 예외적이고, 그 예외상태에 대해 우리 중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2021. 9. 30. 목

아이가 낮잠을 푹 잔 탓일까. 좀처럼 잠 못드는 아이를 토닥이면서 나는 아이를 재우고 나서 밤에 볼 영상작품의 목록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아이 손이 내 손을 꽉 쥐고 놓아주질 않는 탓에, 생각을 더이상 이어가기 어렵다. 아이는 잠들기 직전이나 불안할 때 내 손가락을 쥐고 그 끝을 제 손가락으로 튕기는 버릇이 있다. 애착과 안정을 위한 습관. 그리고 그 습관은 전염성이 강해 이젠 나도 그 버릇이 종종 나오곤 한다. 아이를 토닥이기 시작한지 한 시간이 넘어가자 슬슬 속에서부터 짜증이 올라온다. 결국 나는 아이를 재우는 것을 포기하고 남편과 교대했다. 그리고 인내를 쏟아버린 수면과 비수면의 경계에서 간신히 탈출해 다시 온라인에 연결된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나는 신생아를 키우면서 수유 텀, 수면의식, 수면패턴 등 낯선 전문 용어들을 알게 되었다. 과거엔 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웠던 걸까. 요즘 양육자들이 자주하는 소리다. 인류의 역사만큼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의 수가 많다한들, 동시대 삶의 조건과 상황 속에서 개개인이 경험하는 육아는 놀라움의 항구적인 연속이다. 최근 정부가 돌봄로봇 4종을 개발한단 기사를 읽고 실소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는 돌봄을 직접해본 사람에 의한 발상이 아닐 것일 뿐더러 애초에 그 의도가 불순하다. 다시 말해 이 시도는, 돌봄을 여성의 타고난 자질인 것처럼 성별화 해온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을 저평가할 뿐만 아니라 기계 기술에 의해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독일로 이주한 케냐 출신 난민 인권 운동가 미미의 생전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는 자신이 독일 정부의 난민 귀화 정책에 따라 제 의사와는 무관하게 노인병원의 간호사로 양성되었다고 밝힌다. 그는 당시의 경험을 고통스럽게 기억한다. 아프리카에서 노인은 자발적인 돌봄과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독일의 노인병원에서는 노인을 “공장의 조립라인”에 있는 부품처럼 다뤘고, “환자들은 상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 공동체의 부재를 대체하는 선진국의 의료 시스템은 이질적인 문화 충격이었고, 이를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결국 독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이처럼 소위 ‘문명화’된 국가의 제도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상기해볼 때, 돌봄로봇이라는 국가정책적 해법은 어찌 보면 인간에게 남아 있는 일말의 개인성마저 박탈하고 통제하려는 기술-자본의 교묘한 수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돌봄’의 경험은 매순간의 상호성에 기반한다. 아이의 손가락과 내 손 끝이 만나, 우리는 서로를 돌본다. 인간의 취약성과 늙음, 의존성과 관계, 공감 능력과 맥락이 제도화될 수 있다는 미래주의적 낙관은 현재를 겁박하면서 제도의 ‘환상’을 강요한다. 돌봄은 제도나 기술 등, 절차화된 방식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의 가치로 회복되어야 한다.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잠에서 덜 깬 아이가 울면서 엄마를 찾는다.

2021. 10. 1. 월

엘레베이터에 또 다른 층에서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단 안내문이 붙었다. 벌써 몇 번째인가. 집에 오래 더 잘 머물기 위해서, 부수고 짓는 일을 반복한다. 팬데믹이 불러온 가장 큰 부작용은 어쩌면 그 원인을 성찰할 기회마저 앗아간다는 것일지 모른다. 시끄러운 소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나는 일거리를 들고 나와 ‘워치앤칠’ 오프라인 전시를 본 뒤 카페에 들어가 일을 했다. 서울에 부재했던 것이 불과 3년인데, 그 사이 익숙한 동네와 거리는 제 모습을 완전히 바꿨다. 주택가 골목 곳곳에 카페가 생겼고, 늘어난 카페 수 만큼이나 고정된 일터 없이 임시적으로 일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그리고 노트북을 사이에 두고 넷플릭스를 감상하고 있는 젊은 연인들. 영화를 보면서도 서로를 끊임없이 촬영하는 그들을 보면서, 문득 이들에게 미술관이 제시한 온라인 플랫폼은 어떻게 다가올까, 궁금해졌다.

미디어를 경유한 동시대 예술 환경은 전시/작품뿐만 아니라, 관객성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어쩌면 새로운 세대의 ‘관객’에게 오프라인의 전시는 온라인에서 본 것을 단지 재확인하거나 현장에서 본 것을 온라인 상에 재배열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술관 안내문보다 더 자세하게 전시를 소개하고 있는 어느 블로거의 전시 후기를 읽다보니, 전시를 다시 본 것 같단 착각에 빠져든다. 나는 워치앤칠의 온라인 플랫폼과 그에 조응하는 오프라인 전시를 보며 느낀 어떤 동어반복에 대해 생각하면서 새삼 현재 전시가 처한 양가성을 떠올려 본다.

오늘날 전시는 하나의 유기적 개체로 존재하며 그 안에 설치된 작업들은 그 장기로서 서로 작용하고 보조하고 길항하고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럼으로써, 생동하는 작업의 성질과 상태는 전시를 얼마간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이 짐승은 분명 관객을 먹고 산다. 관객은 전시장 내부로 걸어들어가 그 안을 순환하며 작업에 의해 소화되고 흡수되며 궁극적으로 서로에게 변화를 준다. 이 화이트 큐브라는 종의 피부는 당연히 대개 백색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관객들이 스마트폰을 쥐고 소셜미디어 계정에 늘 접속되어 있기 시작했을 즈음-부터 화이트 큐브는 속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 맹렬한 구토는 단지 관객을 전시장 내부에서 온라인 공간으로 뱉어내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장기를 가죽 바깥으로 내놓게 했다. 이토 준지의 어떤 만화와 같이 겉과 속이 뒤집혔다. 전시의 장기(작업)는 제가끔 절단되어 흰 피부 바깥 온라인 공간에 그야말로 ‘전시’되고 ‘유통’, ‘판매’된다. 그러나 더 두렵고 소름끼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짐승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이 텅 빈 화이트 큐브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

이는 뒤집어 입을 수 있는 옷, ’리버서블’(reversible)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실용적인 복식은 한 벌의 옷을 두 가지 이상의 방식으로 입을 수 있게 한다. 하나의 동일한 실루엣을 지닌 두 가지 무늬의 옷. 이 안감과 겉감의 위치 전환은 드라마틱하다. 왜냐하면 리버서블 재킷은 그것을 뒤집기 전에는 그 속(혹은 겉)이 어떤 표면을 지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환은 몇몇의 ‘드라마’를 겪으며 그 효과를 상실하기 마련이다. 더이상 속(혹은 겉)이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전시장 바깥으로 토해져나온 작업은 철저히 이미지 자본적 기준에 따라 평가되고 세속화된다.

벤야민이 지적한, 의례 이후 예술이 아우라를 상실하는 것처럼 화이트 큐브의 가죽 바깥으로 토해져 나온 작업은 본래의 생물성을 잃는다. 적어도 그런 듯이 보인다. 이때 제도와 관객은 다시 작업을 화이트 큐브의 입 속으로 밀어넣어 이를 되살려놓곤 한다. 리버서블. 다시 뒤집힌다. 아우라/유기성을 가지지 않은 예술을 그들 또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늘의 작업은 ‘토끼의 간’처럼 흰 가죽을 수시로 뒤집으며 겉과 속을 왕복한다. 이는 온라인 공간이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여닫는 것을 연상시킨다. 전시라는 미적인 짐승은, 소셜 미디어에 제 은밀한 내면을 강탈 당했다가 다시 돌려받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심미적 아우라와 자본적 세속성 사이의 환율에 따라 쉼없는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속이 텅 빈 흰 피부의 짐승은, 주지하듯 오늘날 제도 미술/전시가 처한 상황을 은유한다. 동시대 미디어 플랫폼을 경유한 안전한 피드의 감각은, 때로 실제 전시 경험을 충족하며 현실의 경험을 대체하거나 심지어 변형시킨다. 요컨대 팬데믹 이후 전시는 왜 여전히 지속 가능하며, 작품은 왜 전시장으로 돌아와 관객과 마주하는가? 작업들은 결국 물리적 공간으로 회귀하여, 동시대 미술/전시/자본이 개념이나 상품성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추상에 제 몸을 가린다.

2021. 10. 10. 금

지난 여름에 이사 온 이 집은, 대규모 개발로 세워진 신축 아파트 단지에 인접한 구축 아파트이다. 우스갯소리로 신축의 인프라를 덩달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편의성이 있지만, 사실 동네에서 아이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개발이 ‘덜’ 된 건너편의 시장 골목이다. 아이와 함께 구립 어린이 도서관에 가기 위해선 재래시장 골목을 지나야 한다. 대규모 아파트들에 위압적으로 둘러쌓인 다가구 주택을 지나, 우린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어릴적부터 봐온 아주 익숙한 골목길 풍경에서 어떤 낯선 정서가 느껴지는 건, 바로 옆 말끔한 신축 단지와의 대비에서 온 이물감 탓일 테다. 오늘날 부동산 자본은 서울 전역의 잉여공간을 샅샅이 찾아 기어코 식민화하고 만다. 이렇게 아파트의 환금성이 중산층의 주거 형식을 획일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발에 밀려난 골목길은 이제는 낡은 노스텔지어가 아닌 위태로운 욕망을 표상한다.

아이와 함께 이 길을 걸을 땐 그저 걷기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무조건 ‘달리는’ 본능을 지닌 아이들에겐 서울은 위험한 도시다. ‘오토바이 온다! 빨리 벽으로 붙어!’ 나는 아이의 걸음을 확인하고 아이는 스스로를 돌본다. 오늘은 어느 길로 갈까? 비선형적으로 가지치는 길목 앞에서 우리의 오감도 함께 열린다. 어느 집에서 들리는 라디오 속 멜로디와 노인의 목소리, 아이들이 저마다 뛰어가는 모습. 갑자기 가게 앞을 청소하던 주인장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하고, 쑥스러워진 아이가 제 얼굴을 가린다. 매일 걸어도 새로울 이 길을 아이는 유심히 바라보고 경험한다. 그에 반해 신축 아파트 단지는 각 시설물 간의 ‘경계’가 분명히 구획되어 있어 도보 이용이 쾌적하다. 잘 정돈된 단지 내 조경은 마치 분재와 같이 익숙한 ‘자연 풍경’을 눈 앞에 가져다 논다. 그러나 어쩐지 우리가 그것과 마주하기 위해 더 많은 제약에 노출된 것만 같다. 조경 시설물은 만지면 안되고 인공 폭포는 정해진 시간에만 물이 흘러 나온다.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단지 입구의 차단기 지나,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끝내 도어락을 열어야 한다. 지나야 하는 ‘게이트’의 수는 꾸준히 상승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 곳곳에 놓인 “외부인 출입 금지” 팻말은 아이와 함께 보기에 낯뜨겁다. 입주민들의 공동 관리비로 유지되는 아파트의 조경과 시설물들을 ‘외부인’이 누려선 안될 일이란 것이다. 경계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존재한다.

내가 지극히 주관적으로 어떤 풍경들을 대비시킨 것은, 오늘날 도시적 삶의 환경과 미술의 경험 방식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단 사실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미술제도 기관에서 미술에 대한 접근성을 빠르게 상상하면서 과거에 비해 그 편리성과 제도성을 갖추고 있는 한편, 오히려 그것에 진입하기 위한 단계 또한 상승하고 있다. 미술관에 가서 작품을 감상하는 노력은 차라리 단순하지 않은가.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하기 위해선 개인정보를 기입하고 ‘아이디’를 획득해야만 한다. 이후 각각의 작품에 접속하기까지는 몇 개의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아마 그 마지막은 삼각형 모양의 플레이 버튼을 클릭하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새삼스러운 작동방식은-마치 플랫폼 자본의 의도처럼-감상자의 소비 패턴과 취향을 세분화된 카테고리로 정교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치들을 통해 우리가 작품과 만날 수 있는 그 ‘마주침’의 순간은 역설적으로 감소한다. 각각의 정해진 게이트를 통과한 내가 이웃을 만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마주친 헤라르트 테르 보르흐의 <아이의 머리를 빗는 어머니>(1952-53)에는 엄마가 어린 아이의 머리를 빗겨주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러나 미술관에서 이 평온한 실내 풍경화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분명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1665) 바로 왼편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명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에 둘러쌓여 바로 옆에 있는 이 작품은 제대로 보기 힘들 뿐더러, 관객들의 주의 깊은 눈길을 받기엔 아무래도 어려운 처지다. 나는 이런 배치가 꽤나 얄궂다고 생각하면서, 우연히 만난 이 외면 받은 작품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사진을 찍으려는 관객들로부터 비켜줄 수 있냐는 핀잔을 간간이 들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식의 플랫폼에선 이러한 만남의 가능성마저 차단될 것이란 점에서, 아이의 머리를 빗는 어머니가 앞으로 맞게 될 운명은 더욱 가혹할지 모른다.

분명 관객이 제시된 ‘시스템’ 안에서만 미술을 경험하게 된다면 개별적인 맥락화의 가능성은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가이던스에 따라서 콘텐츠에 도달하는 제도적인 길에 ‘옆’ 길이란 없다. 그리고 이 직선의 답답함은 플랫폼에서 작품을 보는 내 조건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 주어진 ‘스크롤’의 권능이 작품에 대한 무례일지 모른단 생각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잘 원하는 시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스크롤 바를 재차 끌어 당기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스크롤의 감각에 익숙해져, 내가 시간을 적절하게 조정하고 있단 착각마저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스크린을 봐야만 하는 극장의 블랙박스가 아니라면, 나는 지나치게 산만한 관객이 되고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어느 한편으론 작가가 획정한 시간성을 깨뜨릴 수 있단 이 힘이 내게 모종의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건 작품의 온전한 감상이 온전히 내 책임 하에 있단 사실에서 비롯한 어떤 부담감이었다. 그 개별적인 시간의 흐름이 내 손끝에 달렸다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이 감정은 새로운 경험을 이끌기도 했다. 즉 그 아이러니한 자율성에도 불구하고, 제작자의 의도에 순순히 따르게끔 만드는 작품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건 일종의 항복선언이었다. ‘나는 스크롤을 반납한다.’ 게다가 한번으론 아쉬워 나는 그 작품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감상했고, 이는-제도가 끝내 틈입할 수 없는-작업이 가진 고유의 힘을 발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온라인 플랫폼은 어떤 상황에 조건 지어진 어떤 시민에게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미술관의 온라인으로의 ‘이주’가 팬데믹에 대한 손쉬운 반응에 머물러선 곤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안적인 접근은 미술관 제도가 예술가와 관객 그 사이의 어떤 긴장 관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미술관이 그 미래를 상상하는 데 있어, 그간 누락시키고 배제해왔던 것을 포괄하는 것이 최우선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어느 재벌 기업가가 사후 미술관에 기증한 소장품의 전시가 이 팬데믹 상황에서도 연일 흥행하고 있다는 작금의 사실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관람 예약은 이미 한 달 전에 마감되었고, 이는 한국 미술을 애호하는 잠재된 관객들을 새삼 발견하게 한다. 하지만 이 아이러니한 풍경 앞에서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어린이가 현대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미술관은 망할까? 물론 안 망할 것이다. 미술관에 외국작가가 없다면 망할까? 아주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관에 이건희가 없으면 망할까? 아마도 망할 것이다. 이 문답은 우리가 지금부터 새롭게 상상할 미술관에 의해 ‘다시’ 쓰여야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누구이며 공통의 경험은 무엇인가. 누구여야 하며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일기에 서술된 사건들은 실제일 수도 또 허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다. 겪지 않은 것을 겪은 듯한 기분이 바로 내가 이 플랫폼에서 가장 온전하게 겪을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리 (시인)

2020년 제39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가 있다. 한낮의 오후, 카페에서 햇빛 받으며 커피 마시면서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을 좋아한다. 글쓰기를 통해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외향적 인간. 취미 부자는 아니지만 진득한 취미를 갖고 있다. 내가 쓰는 시가 이 세계의 또 다른 외연을 보여줄 수 있기를.

‘집’에 대한 소고
발코니와 거실 사이

얼마 전부터 집이 좁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장소에게 잘못이나 책임을 묻고 싶진 않다. 그것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에 위치해 생활하는 주체의 문제다. 내 방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더 이상 책을 둘 데가 없기 때문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 위로 또 다른 책들이 틈을 비집고 놓여 있는 것은 기본이고 무슨 책이 꽂혀 있는지 볼 수 없을 만큼 그 앞에 두꺼운 책들이 쌓여 있기도 하다. 포화 상태인 책장을 벗어나 책을 둘 자리가 필요하여 크기가 작은 책장을 하나 들였으나 이것도 순식간에 다 채웠다. 침대 밑 세 개의 서랍 중 하나의 서랍을 통째로 비워 다 읽은 책들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얼추 정리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도 침대 위엔 작업하는 원고들과 읽지 못한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책상은 보고만 있어도 어지럽다. 내 방은 어느덧 죽은 책들의 공동묘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을 때, 거실로 나온다. 창밖으로는 맑은 날씨가 펼쳐진다. 바로 앞에 뻗어 있는 나무들이 흰빛을 받으며 일렁이는 그림자를 길가에 둔 채 흔들리고 있다. 가끔 참새가 앉았다 간다. 참새를 보낸 나뭇가지는 잠깐 몸을 부르르 떨다 멈춘다. 나는 고요한 집 안에서도 바깥의 풍경을 오롯이 볼 수 있고 나무의 움직임을 보며 바람의 세기를 느낄 수 있다. 오후 두 시쯤 우리 집에서 내다보는 세계는 비현실적으로 조용해서 모든 소리가 사라져 마지막으로 남은 단 하나의 장면만이 정지된 채 멎은 것 같다.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사라진 것 같다. 나는 발코니와 거실 사이에서 이 세계의 유일한 생존자처럼 행동한다. 그것은 바로 음악을 하는 것이다.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한다. 발코니에 있는 전자 피아노를 연주하고 거실에 있는 기타를 연주한다. 피아노와 기타 사이에 내가 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와 기타를 연주하는 나 사이에 빛을 밟고 서 있는 내가 있다. 음악과 음악 사이에 텅 빈 고요가 있다.

집 안을 배회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부에 배치되어 있는 사물들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용자에 의해 가장 익숙한 자리에 위치되고 어느덧 한 공간을 점유하는 모습이 선연한 공포로 다가왔다. 마치 창밖으로 마주한 아무도 없는 세계처럼. 내가 이곳을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을 끌어안으며 소파에 누우면 불현듯 죽음 이후의 나를 상상해보는 것처럼.

또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었다. 예전에는 집을 외부의 타성에 젖은 내부로 사유하곤 했는데 현 시대에서 더 이상 이 사유는 개진하기 힘들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은 집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철저히 고립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제는 완전한 고립을 느끼는 중이다. 소리를 하나둘 떠나보내고 있다. 나밖에 없다. 아무도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존재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중인가. 졸린 눈을 반쯤 치켜든 채 발코니와 거실 사이를 떠도는 시체인가. 음악이 필요하다.

2021. 9. 9. 목
가장 파괴되기 쉬운 공간 ― 위안 광밍 〈주거〉를 보고


무언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물며 책상 밑 구석에 박혀 있는 사진 앨범들조차 종종 꺼내서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쌓인 먼지를 닦아주는데. 거실 선반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기타를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는 동안 한 번도 치지 않았다.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 무슨 일이 있긴 했다. 내 입으로 얘기하긴 부끄럽지만 많은 분들이 인정할 법한 문학상을 받아 곧장 시집을 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전부터 작가였던 것이 아니다. 나는 그저 주변에서 ‘시 쓰는 학생’ 정도로 불리는 상태였으니까. 물론 나는 나의 정체성을 항상 ‘시인’으로 상정했지만 직업적으로나 사회적 위치로나 결함을 가진 채로 이를 받아들이기엔 언제나 역부족이었다. 졸업을 했어도 학생이라고 불렸다. 배울 것이 한참 남았다는 듯이. 평생 배워야 한다는 듯이. 그리고 그 비유는 적절했다. 전 세계에 역병이 돈 지 근 일 년이 되어갈 무렵, 나는 소위 말하는 화려한 데뷔를 통해 작가로서 살아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로부터 약 10개월이 지난 상태다.

작가로서 사는 삶에 어느 정도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그 어느 일을 할 때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바이러스 덕분에 나는 작년부터 거의 집에 콕 박혀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주변을 도사리는 병 덕분에 시인이 될 수 있었다. 요즘에도 가능하면 집에서 글을 쓰려고 몇 달 전 내 방을 아예 작업실처럼 탈바꿈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나로서는 기존에 알던 세계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물론이고 세계 자체가 급변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다. 세상 앞에 책을 낸 순간부터 무척 바빴다. 나를 돌보기 위해서는 가끔 취미 생활이나 문화생활을 해주어야만 하는데 그럴 시간이 도무지 없었다. 시간을 잘 다루지 못한 탓이다. 나는 줄곧 게으름을 피우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기타가 점점 맛이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던 것이다.

작년 겨울을 보내고 올해 봄과 여름을 보낸 후 어느덧 가을 무렵이다. 바빴던 일상 속에서도 내가 반드시 놓치지 않은 것은 꼭 시간을 내어 기타를 고치러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그 다짐은 결코 이번 가을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나의 소중한 기타가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면 결국 내가 아끼는 사물에 소홀한 탓에 일 년이 지나갔구나 하는 허탈함과 자신에 대한 실망감에 빠질 게 분명했으니까.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물을 내 손으로 직접 지키고 싶었다. 더 이상 나의 기타가 망가져 가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오로지 나의 기타를 보살피는 데 온 힘을 쏟은 날이었다.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로 간단히 시리얼을 먹고 기타 가게에 전화를 했다. 이따 낮에 가도 되나요. 언제든 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각자의 용무만 확인하는 간단한 전화를 마치고 나는 부지런히 옷을 입고 나갔다. 양쪽 어깨에 오랜만에 기타를 메고서.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 왠지 낯설게 느껴져 괜히 내리쬐는 햇빛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인상을 찡그리기도 했다. 분명 이전과는 다른 세상이다, 나조차도 계속 바뀌고 있어, 나는 잘 살아야 해, 오래 살아야만 해, 혼자 중얼거리면서 역으로 가고 지하철을 탔다.

기타는 심히 손상되었다고 했다. 넥(Neck)*이 단순히 휜 수준을 떠나 점점 기형에 도달하고 있다고 했다. 기타는 나무이기 때문에 반드시 변형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관리를 잘하면 그 속도를 많이 늦출 수 있다. 예전에는 하루라도 기타를 만지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오래 방치하고 나니 그동안 기타가 자신의 장력에 의해 얼마나 아파했을지 괜히 내 마음이 다 아팠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사물.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지만 내 손길이 닿을 때 비로소 제 의미를 획득하는 사물. 나와 기타는 그런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나는 이에 대해 일정한 책임과 복무를 느끼는 것일 테다. 가게에 있는 기타를 시연하면서 수리되고 있는 나의 기타를 봤다. 처음 집에 들여왔을 때보다 기능이 많이 떨어졌을지 몰라도 아직 나와 함께할 수 있다. 몸을 닦고 새로운 줄로 갈아준다. 헤드 머신이 뻑뻑해서 장력이 무서워 플랫 튜닝을 하고 소리를 내보았다. 괜찮다. 괜찮아. 나랑 좀 더 있자. 외로웠지. 미안해.

욕조에 물을 담고 몸을 담갔다. 반쯤 잠긴 몸을 바라봤다. 물에 담겨 있지 않은 몸은 형체가 뚜렷했으나 물에 담겨 있는 몸은 일렁이는 물결에 따라 형체가 다소 일그러지기도 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나른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문득 찾아오는 불안. 이 평화가 과연 언제까지일까. 이것은 평화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아무에게도 목격되지 않는 나만이 거주할 수 있는 집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지금 집에 갇혀 있다. 다시 다르게 말하면 나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방치되고 있다. 다만 인간으로서 스스로 씻을 능력이 있으므로 나는 나를 관리할 수 있을 뿐이었다. 감사하게 여기지는 못하겠다. 지독한 통증을 예고 받은 기분이다. 바깥에는 병에 걸린 사람과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병이 치유된 사람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마구 섞여 있다.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었다. 숨을 내쉬었다. 내쉬는 숨이 기포를 만들었다. 기포들은 물의 천장을 향해 솟아오르다가 깨졌다.

주거는 인간의 생활 방식이고 거주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다. 나는 주거한다는 감각보다 거주한다는 감각에 더 가깝게 살아가고 있다. 하이데거는 ‘거주’의 개념에 관해 이를 ‘세계 내 존재’로 치환했고 인간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시간을 ‘임시적’으로 사유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이 세계를 잠깐 머물다 갈 운명인 것이다. 그밖에 다른 가능성이 침투할 일은 없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바깥과 주변이 좁아진다. 그리고 바깥과 주변이 좁아질수록 나라는 존재는 점차 소외되고 방치된다. 나를 관리하는 것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게 된다. 바로 내가 지겹도록 거주하고 있는 우리 집. 그러나 정말 여기가 안전한가. 여기에 있기만 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 걸까. 기타를 관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틈틈이 자주 연주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악기는 주인이 지정해준 위치에 홀로 놓인 모습으로 연주를 기다린다. 음악이면 되는 것이다. 악기의 입장에서는 이 세계를 음악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음악이 없다는 것.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 악기는 사형을 선고 받은 셈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집을 안전한 공간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집은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 집은 얼마든지 파괴될 수 있다. 침대 앞에 있는 책장이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안 되게 기울어져 잠자고 있는 나를 깔아뭉갤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은 집과 닮는다. 따라서 영화 <데몰리션>처럼 혼란한 내면 탓에 스스로 집을 부숴버릴 수도 있다. 집과 나는 함께 방치되고 있는 중이다. 먼지에 덮이지 않을 정도로만 살고 있다.

*현악기의 헤드를 포함하여 지판과 프렛이 위치하는 부분

2021. 9. 11. 토
오늘은 안녕하십니까 ― 완타니 시리파타난눈타쿨 〈모든 이는…〉을 보고

아무래도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 살면서 무슨 문제를 껴안고 있길래 그리 싸우는 걸까. 화해할 생각은 없는 걸까. 그만 싸우셨으면 좋겠는데 싸움은 주말 아침이 되어도 계속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구월이지만 아직은 여름의 기운이 강하게 드는 창을 바라보면서 눈을 떴는데. 층간 너머로 싸우는 소리가 여지없이 들렸다. 아무나 우리의 문제를 좀 들여다보라는 듯이.

이번 싸움은 다행히 금방 끝났다. 이전과는 다르게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이 웅얼거리는 소리가 천장을 기어다니다가 어쩔 땐 섞인 말의 개체가 증가하여 사벽에 우글거렸다. 나무는 푸릇했다. 날씨가 정말 맑았다. 그래서 빛을 담은 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벽에 나무의 그림자가 듬성듬성 그려지기도 했다. 책상 앞에 앉아 오늘 할 일을 상기하다 오른쪽을 보면 벽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들. “GO FOR A WALK”라는 글자가 쓰여 있고 그 밑에 어느 푸른 저녁 풀밭 사이를 걸어가는 여자와 개가 그려져 있는 카드. 올해 목표(1. 독서 100권 이상, 2. 시 50편 이상 쓰기, 3. 에세이 30편 이상 쓰기, 4. 영어 공부하기)를 적은 포스트잇. 물론 달성하지 못할 것이다. 흰 종이에 나름대로 그려본 ‘이기리 평일 생활계획표’는 거의 망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실패할 것이다. 나는 목표나 계획을 일부러 나의 역량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세우는 사람이니까. 달성하지 않으려고. 실패하려고. 그런데 이상하게 지나고 보면 꽤 많은 일들을 했다. 말하자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이는 것. 한계치에 도달하게 하여 설령 나의 허무맹랑한 목표나 계획은 실패했을지라도 내가 보낸 시간만큼은 뜨거워진다는 것. 나의 시간이 벽 속에서 이렇게 흘러가는 동안 또 다른 벽 속에서는 싸움이 있었다. 나는 오늘 아침 바로 내 방의 벽 속에는 참으로 다채로운 세계가 존재하는구나 생각하면서도 한 손을 뻗어 벽에 대니 딱딱해도 너무 딱딱하구나 금이 가거나 깨질 일은 이 집에 살면서 한 번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간단한 세수와 양치를 하고 잠옷에서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기만 했는데도 본격적으로 하루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나는 일주일 중 4일 혹은 5일을 운동한다. 그리고 되도록 평일에 계획한 운동을 다 끝내려고 한다. 그러니까 오늘처럼 주말 아침에 운동을 한다는 것은 실은 스스로에 대한 책무에 시달리는 과정에 속한다. 거실에서, 발코니에서, 뜨거운 햇볕 속에서 나를 채찍질한다. 그러게, 왜 게으르게 살아서 주말에 편히 쉬지를 못하니. 좋아하는 일을 미루고 미루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따분해지고 지겨운 일처럼 여겨지고 너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말들이나 되뇌면서 영혼이 탈주한 몸과 표정으로 반복 운동을 하고 있게 된다. 운동을 하다 보면 참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오늘 한 생각은 층간 소음에 관련된 것이었다. 특히 내 방에 있으면 적나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싸움이 어떤 원인으로 발생했는지 궁금했고 그들이 싸우지 않은 날에는 어떻게 살아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역시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남의 가정사나 궁금해하다니. 차라리 다행이다. 예전 같았으면 또 다시 불같은 화가 치밀어 올랐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니 이제 두 사람이 일으키는 소음에 대해 득도한 게 아닐까.

몇 달 전 아파트 현관에 벽보를 붙인 적이 있었기에. 그 당시 나는 시시때때로 들리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화를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나는 일상을 살다 보면 서로 묻힐 수밖에 없는 소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지속된다는 건 얘기가 달랐다. 마치 내 방에 두 명의 침입자가 발생하여 정작 주인인 내가 특정 공간에서 탈락되는 것 같은 세계. 여러 목소리가 혼재되어 방 안을 떠돌다 보면 어느새 나는 침묵을 하고 있다. 다른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만 내 방을 침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발소리가 전형적이다. 나는 지금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아랫집의 모든 생활을 방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생활 자체가 침투한 것이다. 하루는 소음이 일어나는 원인을 찾기 위해 밖에 나왔다. 우리 집은 2층이므로 대략 1층부터 4층까지가 예상 범주에 속할 수 있었다. 양해를 구해 이웃집의 문들을 두드려본 결과 잠정적으로 바로 밑에 살고 있는 1층 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때 나는 아랫집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위에서 들리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소리는 바로 앞서 말했던 싸움이었다. 어느 날의 싸움은 거의 옆에서 보고 있다고 믿어질 정도로 선명하게 들렸었다. 부엌에서 접시를 바닥에 던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한 사람이 욕설을 하면 남은 한 사람이 욕하지 말라고 하는 대화. 대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 시간을 넘게 들어야만 했었다. 이 말은 한 시간이 넘도록 책도 못 읽고 글도 못 쓰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 싸움이나 듣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혼재되는 소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익숙해졌다. 집에만 있는 날이면 더욱 그랬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음악을 켜두었으므로 방 안에 음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끔 자세를 고치면 의자가 삐걱거린다. 발끝에 휴지통이 턱 걸린다. 서랍을 열고 닫는 소리. 때마침 아랫집에서 쿵쿵대는 발소리. 곧바로 두 사람이 싸우기 시작하면 기가 막힌 심포니가 연주된다. 온갖 잡다한 소리가 방 안을 꽉 채우는 것이다. 나는 정신이 몽롱해진 채 좁은 방을 배회한다. 나의 생활도 누군가의 공간을 침범하고 있겠지. 어쩌면 생각보다 위협적인 존재로 낙인 찍혔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나의 생활이 일면 타인의 삶과 정신에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딱히 유쾌하지 않아 보인다. 요즘엔 더 그렇다. 밖에 나갈 일이 손에 꼽히다 보니 집에서의 생활을 최대치로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안전한 나만의 공간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특정 실체만을 상정하진 않는다. 불특정 실체와도 살아가는 삶. 나에게는 반려 소리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반려 목소리를 소개했다. 이 목소리는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두 목소리며 주로 저녁 여섯 시 반부터 일곱 시 사이에만 나를 찾아온다. 방에 데리고 있다 떠나고 나면 묻는다. 내일은 안녕하시기를. 부디 무탈한 하루를 보내시기를.

저녁에는 잠깐 편의점에 다녀왔다. 먹을 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가로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짧은 동영상으로 남겼다. 이때만큼은 주변에 그 어떤 소리들도 들리지 않았다. 아주 침착하고 고요했다.

2021. 9. 12. 일
거푸집처럼 ― 차이 시리스 〈포시즌스〉를 보고


좋은 날씨가 계속되면 불안하다. 이러다가 갑자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올 것만 같아서. 또 소식 없이 누군가 아프다가 세상을 떠날 것만 같아서. 좋은 것 뒤에 좋지 않은 것이 있지 않고 슬픈 것이 있어서. 그러니까 일기는 매일 느낀 불안과 공포를 기록하는 일이다. 삶을 체득하는 동시에 어떤 삶을 통째로 버리기도 해야 하는, 오롯이 살갗으로만 하는 투쟁의 역사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으므로 더운 기운이 가시지는 않았다. 구월이면 류시화 시인의 「구월의 이틀」이란 시도 떠올라서, 여름의 초록이 남아 있어도 왠지 가을로 넘어가고 있는 듯한 계절감이 느껴지고, ‘숲’, ‘오솔길’, ‘나무’, ‘새’, ‘태양’, ‘빙하시대’ 같은 시어들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고, 비만 내리면, 이 모든 여름이 다 축축해지고, 움츠린 몸들을 추위 속으로 몰아넣어야 하는, 겨울이 온다는 생각에, 검은 눈동자가 자신의 색을 더 짙게 한다. 아침에 읽던 시집을 덮고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아 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잘 주무셨어요, 말 대신 첫 말을 다음 문장으로 뗐다. 배드민턴 치러 가실래요? 아버지는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원래 집에 채와 공이 없었다. 우리 집에 적어도 테니스 채와 배드민턴 채와 각각의 공들은 구비되어 있었다. 어렸을 땐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과 친구들과 공을 주고받으러 나갔다. 친구들과 놀 땐 아파트 단지에 있는 테니스장과 공원과 운동장을 갔었다. 가족과는 주로 배드민턴을 쳤다. 특히 아버지랑 그렇게 많이도 쳤다. 집 앞에는 좁은 골목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퇴근하고 거뭇한 저녁이 되면 그곳으로 나가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며 배드민턴을 쳤다. 아버지는 나를 혹독하게 키웠다. 초등학교, 중학생을 상대로 무자비하게 공을 몸 쪽으로 꽂았으니. 나는 절대로 공을 받을 수 없었다. 가끔 명치로 오는 공을 맞으면 잔혹한 아버지가 미웠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응수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였다. 우리 자주 놀았었는데, 과거를 추억하다가 아버지와 누나랑 급작스럽게 차를 끌고 채와 공을 사러 간 것은 바로 어제였다. 문득 배드민턴이 너무 치고 싶은데 우리 집에 이제 그런 건 없었으니까. 다시 사러 나가는 기분은 설렘 그 자체였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중학생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초등학생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만큼 젊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자연스럽게 영등포 타임스퀘어를 행선지로 설정했다. 거기에 운동 관련된 많은 기구들이 있으니 구경 겸 가보기로 했다. 영등포에 이런 거대한 건물이 생길 줄 누가 알았을까. 지금은 마치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잘 있다. 벌써 타임스퀘어가 지어진 지도 약 12년 정도 됐으니까. 거푸집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여섯 시 정도는 되어야 날씨가 선선해질 거야. 그때 누나랑 같이 가자.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각자 할 일을 하며 여섯 시를 기다렸다. 얼른 배드민턴을 치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배드민턴을 칠 수 있어서 한껏 들뜬 상태였다. 그날의 골목, 저녁 가로등 불빛 속에서 아버지와 나와 한창 신나게 배드민턴을 치고 있을 때. 둘이 어떻게 놀고 있나 궁금해서 밖으로 나오는 엄마와 누나의 모습이 생각난다. 나온 엄마와 누나는 담장 밑에 깔린 돌바닥에 앉아 두 무릎을 양팔로 모아 우리를 구경했는데. 그러다가 내가 공에 또 다시 맞으면 저녁 골목은 웃음으로 가득했는데. 언제부터 그 골목을 비워 두게 되었을까. 우리는 각자 너무 바빴다. 살기 바빴다. 꿈을 찾고 꿈을 좇느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세가 기우는 집을 살리느라. 모든 마음의 모양을 어르고 달래느라. 울기 바빴다. 우는 일이 일상이었다.

동네에 있는 생태공원은 어느덧 제자리를 찾은 듯 자라난 나무들과 풀들이 흔들리며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고 자갈길을 걸으면 빗방울처럼 나는 차락차락 소리가 좋아 보폭을 냉큼 줄이기도 했다. 여기는 오면 올수록 신기해. 어떻게 군집된 건물들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폐허로 만들었다가 단란한 가족들과 강아지들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뛰놀 수 있는 공원을 만들 수 있지? 마찬가지로 나는 공원의 거푸집을 또렷이 기억한다. 진입을 막는 펜스가 둘레에 쳐져 있었다. 그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들이 갈리고 남은 흔적인 돌무더기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를 흙더미가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여기가 생태공원이 된다고? 친구와 나는 그 주변을 지나가면서 말도 안 된다고 대화를 나누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란 듯이 물속에 사는 생물들이 있고, 하나씩 운동기구를 차지하여 어설픈 자세로 운동을 하고 있는 노년의 어르신들이 있고, 네트를 두고 배드민턴을 치는 우리 가족이 있다. 한때는 거푸집이었던 곳이 모습을 갖추게 되자 우리 가족도 오는구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구나. 그 사실이 조금 신기해서 공을 있는 힘껏 세게 쳤다. 어항처럼 생긴 아버지의 배에 공이 꽂혔다. 맞은 공은 귀엽게 흙바닥에 떨어졌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살아 있어서 참 좋아, 너무 좋아. 시간이 느리게 가길 바랐다.

아파트가 숲처럼 이루는 곳에 자리한 생태공원이 가끔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기억난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도 한때 모델하우스였지.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임시적으로 마련된 공간. 모델하우스였을 때 우리 집엔 소파 하나만 놓여 있었다. 나는 소파 위를 정신 사납게 뛰었다가 옆에 같이 있던 사촌형에게 번쩍 들어 올려졌다. 공간에게도 골격과 토대였던 시절이 있는데, 시간이라고 없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에게도 거푸집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야 했던 모양이 있지 않았을까. 마음도 마찬가지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모두 흐르고 흘러 다 지나가기 위해 준비했어야 했을 골격과 토대가 거푸집이었을 테니. 그 안을 비우기 위해 무엇을 허물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의 안과 마음의 안에는 무엇이 들어차 있었을까. 거기에 새로운 모양을 짓기 위해 무엇을 밀어버리고 무너뜨리고 또 무엇을 채우고 지어야만 했을까.

나 역시 거푸집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전한 육체를 갱신하다가 다시 거푸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나는 시간을 거푸집으로 돌아가는 형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언젠가 왜소해질 것이다. 뼈만 남게 될 것이다. 피부는 축 늘어지고 얇아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약 두 시간 만에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작은 상자에 담길 것이다. 나는 사라졌으나 내가 사라지지 않았고 각자의 마음속에 남았다고 생각해줄 착한 몇몇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나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갈 것이다. 나를 허문 자리에 기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예쁜 공간을 조성해주었으면 좋겠다.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중에, 이 방에서 쓰는 글들과 함께, 내 바람은 오직 그뿐이다. 그러기 위해 오늘 흘린 땀을 씻어내고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책들을 정리해야지. 아무렇게나 흩뜨리지 말고 깔끔하게 지내기로 약속하자. 어지럽다.

2021. 9. 20. 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 구동희 〈타가수분〉을 보고


이 년 만에 해남에 왔다. 해남은 우리 집 고향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해남에서 태어났고 해남에서 자랐고 해남에서 같은 중학교를 나왔으며 해남에서 만났다. 해남에서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은 결실을 맺어 딸과 아들을 낳았고 그들 역시 해남과의 인연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해남으로 갈 때만큼은 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이제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를 갔다 오는 일 자체가 힘들어졌지만 이번만큼은 시간을 내어 조심스럽게 왔다. 올 수 있었다. 살아 있는 가족과 돌아가신 가족을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차가 너무 많이 막혔었다. 해남을 가기로 했다면 각오해야 할 일이었다. 서울에서 해남으로 가는 것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도로에 쏟아야 한다는 뜻이니까. 언제 도착할지 장담할 수 없다. 그냥 도착할 때까지 가는 것. 도착해야만 이 움직임은 끝난다.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여권을 챙기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렇다면 아마 도장을 잔뜩 찍고도 남았을 거다. 이제는 누나와 나 둘 다 운전을 잘할 수 있어서 아버지 혼자 모든 일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적, 아버지는 우릴 데리고 스물 네 시간을 넘게 운전한 적도 있다. 그때 고속도로 위에는 헬기가 떠 다녔다. 운전자들이 차에서 내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담배를 피우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헬기에선 지속적으로 사이렌이 울렸었다. 졸지 말고 안전하게 가라고 나라에서 그런 일도 했던 것이다. 아침에 출발했는데 해남에 도착하니까 다시 해가 뜨고 있는 풍경이나 저녁에 출발했는데 다시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풍경은 내게 꽤나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생기고 난 이후부터는 이동 시간이 많이 짧아졌지만 여전히 해남은 먼 곳이다. 운전을 3교대로 했는데도 체력적으로 만만하지 않았다. 나는 고창고인돌휴게소부터 목포에 진입하여 해남까지 가는 코스를 맡았었다. 비교적 부담이 덜 되는 길을 맡았지만 책임을 가지고 성실히 운전에 임했었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해남에서 이틀째 지내고 있고 내일이면 추석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추석 당일에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었기에 추석에 할 일을 오늘 하고 가기로 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는 것. 고당리에 있는 산 중턱에는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가 합장으로 모셔져 있다. 그리고 송정리 집 앞에는 외할아버지가 자신의 부모님 옆에 같이 모셔져 있다.

인사를 잘 드리기 위해서 어제는 증조외할머니가 계신 묘지에 가서 벌초를 했다. 벌초를 핑계로 오랜만에 아버지를 조수석에 태우고 트럭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오랜만에 수동 스틱을 사용해서 그런지 운전이 어색해서 조금 하다가 그냥 다시 아버지께 운전석을 넘겼다. 기계에서 아주 작은 부품이 빠져나오자 기계가 통으로 멈추는 것처럼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다. 사실 운전을 머리로 하고 있다는 순간부터 탈락이었다. 묘지에 도착하니 정말 말도 안 되는 풍경이 우릴 압도하고 있었다. 농담 하나도 안 보태고 풀이 아버지와 내 키만큼 자라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오자마자 바로 보여야 할 입구가 어딘지를 몰라 잠깐 헤매었을 정도였다. 다행히 입구에는 나름 경계 지어진 부분이 있어서 여기서부터 풀을 치면 되겠다고 얘기했다. 기계를 쓰는 건 아버지 담당이었고 나는 옆에서 잘린 풀들을 갈퀴로 긁어 잘 모은 뒤 치우면 됐다. 아침 날씨는 선선했지만 곧이어 해가 강한 열기를 내뿜으며 우리의 뒷덜미를 위협했다. 완전 무장하여 옷을 입었는데도 시골 모기에 몇 방 물리기도 했다. 해남에 있으면 버물리를 바르고 오는 예식이라도 필요하다는 듯. 그래도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간 내에 벌초를 끝내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하여 추석 연휴 동안 살아 있는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렸으니 오늘만큼은 돌아가신 가족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야지. 고당리 산 중턱부터 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언제까지 이 길을 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올라가는 길이 험준하여 나조차도 힘을 빼면 옆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나는 앞장서서 우리 가족에게 위협이 될 만한 나뭇가지나 가시 등을 치우며 갔다. 진땀을 빼고 그곳에 도착하면 봉분 두 개가 우리를 반겨준다. 하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합장되어 있는 봉분이고 나머지 하나는 할아버지의 형인 큰할아버지가 계신 봉분이다. 우리는 두 봉분 앞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주변에 소주를 뿌렸다. 그러고는 매번 앉던 자리에 앉아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고당리 마을 바로 옆에는 바다라서 할머니는 우리 가족이 온다 하면 해산물이 들어간 요리를 많이 해주셨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할머니가 해주신 굴 요리를 가장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해주셔서 그런지 굴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지금은 간척되어서 바다가 있어야 할 자리가 땅이 되었다. 한눈에 마을을 볼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리고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기서 밥도 먹고 체육대회도 하고 선생님한테 혼나기도 했겠구나. 그 시절엔 어떤 마음들이 오고 갔을까. 나는 그런 게 궁금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풍경을 보고 있다가 불현듯 할아버지와 할머니 앞에서 흐느꼈다. 최대한 아무에게도 눈물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등을 보였지만 어깨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썩였다. 너무 늦었죠. 할아버지, 할머니. 저는 작가가 되었어요. 책도 나왔어요. 보셨으면 그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텐데. 꼭 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너무 늦었어요. 죄송해요.

외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릴 땐 저편으로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노을이 지평선처럼 가늘게 뻗어 곳곳의 기와지붕과 언덕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가족에게 말했다. 잘 봐요, 우리에게 선물하는 풍경이에요. 나는 죽어서도 우리가 살아 있었던 시절을 잊지 않을 거예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삼겹살을 먹었다. 어른들은 각자 취향에 맞게 술을 한잔했고 나는 음료수나 홀짝 마셨다. 나는 돌아왔다는 기분이 많이 들었다. 비로소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 살아 있기에 언젠가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다. 그곳이 많은 이들에게 개방된 곳일지 폐쇄된 곳일지는 반대로 살아 있어서 알 수가 없다. 아마 죽어서도 들려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좋다. 이대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다. 마음껏 웃고 떠들고 싶다. 해남에는 한 번 더 돌아올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시간에는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2021. 10. 8. 월
필요한 간격으로 잘 있기 ― 오민 〈에이 비 에이 비디오〉를 보고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포항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고 그의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아 보내준다. 나는 그의 옆에 있다고 상상해보면서 같은 풍경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풍경은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있고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은 멈춰 있다. 그가 바라보는 풍경에는 구름이 밀려오는 속도가 보일 것이고, 바람을 따라 자유로운 레이스 커튼의 찰랑임이 보일 것이고, 물이 바위에 부딪혀 여러 갈래로 쪼개지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내가 보는 풍경에는 모든 것이 정지됐다. 더는 움직일 기분이 아니라는 듯이. 이대로 세계가 저주 받기를 바란다는 듯이. 며칠을 그와 붙어 있었다가 떨어지니 간격이 느껴진다. 이것이 현재 나와 그의 간격이다. 생동하는 세계와 정지한 세계 사이에 서 있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있는 곳은 아직 맑은데 그가 있는 곳에서는 벌써 비가 내린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은 필요하다. 다시 우리가 만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떨어져 있어야만 또 만날 수 있다. 또 만난다는 것은 헤어짐을 전제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없는 일이니까. 또 만나자는 약속, 그것은 희망이다. 반드시 만난다는 것, 그것은 확신이다. 그리고 희망과 확신에는 언제나 불안정한 믿음이 따른다. ‘하지만 무슨 수로?’ 같은 물음이 따라온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확실한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나는 서울에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포항에 있다. 서울에서 포항까지의 거리는 약 350km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사랑하는 사람을 보러 가기 위해 기차표를 끊고 포항으로 갈 수 있다. 어쩌면 어느 영화의 주인공처럼 차를 끌고 비가 오는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시간을 겹칠 때가 아니다. 하여튼 멀긴 멀다.

나는 집에 혼자 있다. 집을 둘러본다. 사물들이 어질러져 있다. 소파에 있어야 할 쿠션들이 거실 바닥을 뒹군다. 식탁에 김치를 담은 통이 있다. 주방용 가위가 택배 박스 위에 있고 리모컨이 실내 자전거 안장 위에 있다. 내 방은 말할 것도 없다. 여전히 침대 위에 수십 권의 책들이 쌓여 있다. 침대는 책의 무게에 짓눌려 모양이 조금 꺼진다. 의자에도 책이 몇 권 쌓여 있고 책상에도 책이 몇 권 쌓여 있다. 나는 이러다가 책에 깔려 죽을 팔자. 벽에 붙인 포스터가 떨어지려고 한다. 마스킹테이프는 아무래도 접착력이 구린 것 같다. 예쁘기만 하고 기능을 제대로 소화한 적이 없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약간 비뚤어진 포즈로 책상 위에 있다. 이것으로 음악을 듣지 않은 지도 오래다. 전원이나 켜질지 의문이다. 나는 스피커를 제 위치에 두고 최대한 정면을 향하도록 배치한다. 측면을 바라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그런 변화를 병적으로 의식하고 고치려는 주인이다. 사물이 내 의식에 맞게 똑바로 위치해 있지 않으면 그 변화를 잘 견디지 못한다. ‘예민한가?’ 싶다가도 오히려 의식을 사물에 투영하여 원하는 공간감을 형성하는 것이 이 집의 안정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의식은 사물을 해친다.

집에서 생활하다 보면 사물을 정의하게 된다. 가령 위에서 말한 주방용 가위는 실은 새로 산 옷 태그를 자르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택배를 뜯진 않는다. 이러한 의미적 제약을 두기도 하는 반면 내가 진심으로 소중하게 다루는 기타는 항상 내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연주되어야 한다. 그 외에는 방치된다. 이것은 보편적 제약이다. 그리고 특정 사물에는 이름을 부여한다. 똑똑해 보이는 토끼 인형에게 ‘소크라테스’라고 부르거나 전자 피아노 아래 정갈하게 놓인 아령 여섯 개를 ‘건강 지킴이’라고 부르는 행위에는 자신의 애착을 의미화하는 동시에 애정하는 사물을 자신의 내면으로 귀속하여 영토화하려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지나친 자의식인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사물이 내가 생각하는 위치로부터 흐트러지면 즉각 발견하고 원 상태로 돌려놓는다. 사물이 인간의 손을 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좋은 주인 아래서 자리에 익숙해지는 것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여기는 걸지도.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간격이다. 나는 각각의 사물들이 딱 달라붙어 있지 않게끔 여유 있는 간격을 준다. 두 개의 리모컨을 소파에 두어도 살짝 떨어뜨린다. 쿠션들과 책들은…… 어쩔 수 없이 다닥다닥 붙는다. 붙어 있지 않고 독립적으로 위치하는 사물들이 건강해 보인다. 온전한 가위, 온전한 화장품, 온전한 기타, 온전한 피아노, 온전한 신발, 온전한 손톱깎이, 온전한 셔츠, 온전한 안경…… 들로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각자에게 필요한 간격으로 잘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집은 수많은 간격으로 구성되는 걸까. 또 그렇다면 이 세계 또한 수많은 간격으로 구성된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서울에 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포항에 있듯. 이 또한 잘 있는 것 아닌가.

일기는 분명 ‘오늘’ 있었던 일(들)을 적는 건데 왜 문장을 과거형으로 쓸까. 오늘은 현재인데 왜 과거의 문장들을 데려와 기록하게 되는 걸까. 혹시 일기란 현재와 과거를 혼동하고 착각하는 과정을 쓰는 일인가. 당연히 ‘있었던’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사실, 나도 안다. 그래서 오늘은 현재형으로 쓰고 있다. 오늘을 붙들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잘 있는가. 내 친구들도 잘 지내는가. 대전에서, 부산에서, 인천에서, 수원에서, 일산에서, 일본에서, 프랑스에서 잘 지내는가. 가족들도 목포에서, 해남에서, 춘천에서, 미국에서 잘 지내는가. 우리는 모두 다른 간격으로 지내는가. 정말 다른가. 간격은 정말 물리적 거리를 의미하는가. 오늘은 금요일이다. 금요일은 지나간다. 금요일이 다 지나갔다는 것은 오늘이 다 지나갔다는 뜻과 같다. 금요일은 돌아온다. 금요일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오늘은 돌아온다. 오늘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이런 착각을 거듭할수록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미래가 된다. 시간이 교차된다. 나는 일기를 통해 개별적 사건들을 하루 단위로 간격을 둔다. 일기장엔 하루들이 잘 있다.

하루들이 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은 언젠가 약속한 미래적인 만남이다. 모두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모두 만나게 될 것이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늘을 잘해야지. 이따 전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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